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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모리슨 호텔 서평





  먼저, 작가를 통해 작품을 바라본다면, <모리슨 호텔>에서도 김경욱의 흔적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김경욱의 작품을 모두 읽은 것은 아니지만, 김경욱의 작품에는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느낌(뉴욕보다는 베를린 같은)이 묻어난다. 작품의 배경 자체가 도시가 되는 경우가 많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물들 중에도 도시적인 것이 많다. 영화관이라든가, 펍이라든가, 자동차라든가 도시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여러 번 등장한다. <모리슨 호텔>의 경우에도 배경은 도시이며, 주인공들의 직업 역시 레코드 가게 주인, 비디오 가게 알바생, 인물 포토그래퍼와 같이 도시적이다. 고층 빌딩이 즐비하는 도시이기 보다는 한적한 동네 느낌에 더 가깝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자연과는 동떨어져 있다. 주인공은 주로 남자인 경우가 많은데,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과 동떨어진, 사회적이기 보다는 은둔적인, 그러하더라도 전자기기를 이용한 다른 형태(PC통신이라든가, 싸이월드라든가)로 사람들과 스스로를 연결해보려는 존재인 경우가 많다. 특징적인 것은 - 여러 작품에서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 주인공들이 대체로 영화나 음악에 조예가 깊다는 것이다 (미술 작품이 제시될 때도 있으니, 예술에 조예가 깊다고 할 수 있겠다). 특별히 감수성이 풍부하다고도 볼 수 있고, 오타쿠적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인데, 그들은 주로 김경욱(71년생)10, 20대를 지낸 시기인 8-90년대 홍콩 영화 조예가 깊다. <베티를 만나러 가다>, <장국영이 죽었다고?>에서 홍콩 영화에 대해 언급이 나오는데, 이 작품에서도 작품 곳곳에 홍콩 영화가 등장한다. ‘아성은 오우삼 감독이 만든 영화를 좋아하기에 주구장창 카운터에서 그의 영화만 돌려보고 있고, ‘운하마리<아비정전>에 나오는 대사를 공유한다. ‘마리당신과 나는 199373일 오후 여덟 시 20분부터 21분까지 1분 동안 함께 있었어요. 우린 이 1분을 영원히 잊지 못하게 될 거예요.” 말하면, ‘운하“<아비정전>이로군요.”라 대답한다. 마치 <베티를 만나러 가다>에서 남녀 주인공이 PC통신 채팅방을 통해 영화 대사를 주고 받은 것처럼 말이다.

 

구조를 살펴보자면 작품은 세 챕터로 나뉘고, 모든 챕터는 화자를 서로 다르게 하며 1인칭 시점을 취하고 있다. 첫 챕터의 화자는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는 운하이고, 둘째는 비디오 가게 알바생인 아성’, 셋째는 본명이 말희인 포토그래퍼 마리이다. 구조상 특징적인 점은 각 챕터의 시작 부분에 영화의 대사가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제시된 영화를 보았다면 작가의 의도를 더 잘 파악할 수 있었을 테지만, 대사의 내용만 보아도 대사들이 각 챕터의 서사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각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일 아침 하늘이 하얗다고 해줘. 그게 만일 나라면 난 구름이 검다고 대답할 거야. 그러면 서로 사랑하는지 알 수 있을 거야

첫 챕터에 나오는 <퐁네프의 연인들> 속 대사는 운하마리의 사랑을

 

너의 입술은 내 귀에 가만히 속삭였어. “내 눈동자 속에 노랗고 작은 달이 뜨는 건 나의 절정을 말하는 거야라고 네 눈을 보았어. 잠시 후 난 노랗고 작은 달이 떠오르는 걸 보았고 꿈에서 깨어났어.’

두 번째 챕터에 나오는 <나쁜 피> 속 대사는 아성은미의 사랑을

 

정말 우습지 낯선 곳에 왔는데 모든 게 똑같으니 말야

세 번째 챕터에 나오는 <천국보다 낯선> 속 대사는 지환의 자살을 연상시킨다.

 

  한편, 이 작품은 수미 상관 구조를 지니고 있다. 첫 번째와 세 번째 챕터는 운하마리의 서사가 주를 이루고, 두 번째 챕터는 마리가 스치듯 등장하긴 하지만 아성은미의 서사가 주를 이룬다. 때문에 첫 챕터를 마치고 난 후에 운하마리의 이야기는 두 번째 챕터를 읽으며 머릿속에서 잠시 희미해졌다가 세 번째 챕터에서 다시금 떠오르게 되는데, 이때 그 둘이 함께 등장했던 장면의 의미가 더 깊어진다. 마치 시구에서 첫 연과 끝 연에 같은 내용의 구절을 반복하면 그 의미가 한층 강조되는 것과 같이 말이다.

 

다음으로는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오브제(맞는 표현인지 모르겠다)에 주목해보겠다. ‘운하의 시점을 취하고 있는 첫 챕터에서 파리운하의 일생에서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등장한다. 그리고 파리를 마주치는 시점마다 운하는 죽음을 맞닥뜨리게 된다. ‘운하가 처음 파리를 마주쳤을 때는 이윽고 교통 사고가 나서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두 번째 파리를 마주쳤을 때는 마리운하의 아이를 낙태한 사실을 알게 된 바로 이후이다. 마지막으로 운하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파리를(맡은 편에서 오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이기도 하다) 맞이하게 된다. 특이하게 이 작품에서는 파리떼도 아니고 파리가 죽음의 이미지인 것이다. 우리는 흔히 쉽게 죽는 것을 빗대 파리 목숨이라 하지만, 교통 사고 또는 자살로 한 순간에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면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과 다를 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 파리는 운하의 분신이기도 하다. ‘마리운하의 인생에서 사라진 후, 불안하고 답답한 운하의 마음을 대변하듯 파리가 유리창 사이에 껴서 방황하는 모습이 제시된다. 또한 운하역시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전생에 파리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며, 파리와 같이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첫 챕터의 제목이 파리의 우울이고 챕터의 시작 부분에 <퐁네프의 연인들>의 대사가 적혀 있기에 작품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는 프랑스 파리의 이미지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파리의 우울의 파리는 곤충 파리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또 프랑스 파리랑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후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파리의 우울>은 보들레르의 유명한 시집 제목이기도 하며, 퇴폐적이고, 타락한 파리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이는 부모를 여읜 이후 방황하며,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삶을 산운하의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파리는 도시와 곤충 모두 뜻하는 바가 있던 것이다.

챕터의 제목에 대해 언급했으니, 제목과 관련해 다른 부분도 살펴보겠다. 작품의 제목인 모리슨 호텔은 두 번째 챕터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는 아성은미가 행복한 시간을 가졌던 록 카페이며, 그들이 함께한 마지막 날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모리슨 호텔은 도어즈라는 록 그룹의 앨범 타이틀이다. 그 앨범의 재킷에는 하드록 카페 앞에서 서성이는 노인들이 비춰지고 있다. 작가는 작품을 끝맺으며 만일 록이 하나의 음악장르이기 이전에 특별한 인간정신을 상징한다면 바로 그런 의미에서일 것이다. 오늘도 나의 발길은 모리슨 호텔을 향하고 있다.’라 적고있다. 작가는 사랑하고, 고뇌하며, 쉽사리 열정에 휩싸여버리는 역동적인 젊은이의 모습과 그 정신을 모리슨 호텔로서 이미지화한 것이다. 백발의 노인이라도 그 마음 속에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모리슨 호텔은 그에게 항상 문을 열어놓을 것이다. 하지만 은미를 허무하게 잃고 만 아성에게 모리슨 호텔은 문을 굳게 닫아놓을 것이다. 아무리 그가 젊더라도 말이다. 작품 속에서 모리슨 호텔이 후에 갤러리로 바뀌게 된 것은 아성이 은미의 죽음 이후 전과 같은 열정을 되찾을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세 번째 챕터의 제목은 중독된 슬픔이다. 슬픔이 중독될 수 있나?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그럴 수 있다고 끄덕인다. ‘마리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떠나면서 삶에 균열이 생겼다. 그 균열은 슬픔이라 할 수 있고, 이는 사라지지 않고 마리의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마리는 이후 완벽할 수 없었고, 완벽하다고 여겨지는 그의 약혼자 인서와 결국 파혼할 수밖에 없었다. 슬픔이 쉽게 떨쳐지지 않은 것이다. 더불어 지환 역시 자신의 정체성의 혼란이 가져온 우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끝내 자살을 택했다. 이 역시 슬픔에 중독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편 음악은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테마이다. 등장인물들이 어떠한 행위를 하거나, 특정한 장소에 있을 때 항상 음악이 함께 한다. ‘운하가 부모를 여의게 된 교통 사고가 일어나기 전 차안에서는 비틀즈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은미는 성관계를 맺을 때 꼭 짐 모리슨의 ‘Light my fire’을 듣는다. 이외에도 지환이 자살하기 전 은미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 빌리 할리데이의 노래가 흘러나왔으며, ‘아성이 등장하는 장면 장면마다 짐 모리슨의 앨범이 재생되고 있다. 등장인물들이 좋아하고, 자주 듣는 노래는 서로 다르지만, 그 노래 대부분은 20세기 후반의 서양 음악이며, 그 중에서도 주로 밴드 음악이다. 이런 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작품 속에서 음악은 주인공들의 정신 상태를 표상하는 것이자, 그 장면의 분위기를 연출해내는데 큰 역할을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작가 역시 작가의 말을 통해 이를 드러내고 있다. 다만 내가 그 시대의 정서를 모르고, 각 음악이 풍기는 분위기를 모르기 때문에 구체적인 분석은 못하겠다.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독자마다 다른 답을 내놓겠지만, 작품에는 세번이나 반복되는 부분이 있고, 이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 ‘운하의 아버지의 대사는 작품 통틀어 세 번이나 등장한다 (책 제목 바로 뒷장에도 이 구절이 적혀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네 번이라 할 수도 있다). 아버지의 입을 통해, 운하의 생각 속에서, 마리의 생각 속에서 말이다.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인생이란 FM 음악프로와 같은 것이란다. 정해진 시간 동안 늘 자신의 귀에 맞는 노래만 들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자신이 싫어하는 노래도 꾹 참고 들어야 하는 법이야. 그것은 좋아하는 노래를 듣기 위해서이지.” 좋은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힘든 날도 참고 기다려야 된다는 이야기다. 이 구절 대로라면 주인공들은 힘든 날을 참고 견뎌내서, 좋은 결말을 맞이해야 한다. 하지만 소설에서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운하마리가 남겨놓은 공허함에 술에 진탕 취해 운전하다 교통사고로 허무하게 삶은 마감했고, 이유 모를 우울에 휩싸여 있던 은미는 목욕탕에서 팔을 그어 자살했다. ‘마리의 첫 사랑이던 지환도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괴로워하며 베란다에 뛰어내리는 선택을 하고 만다. 더욱 비극인 것은 마리는 아버지의 상()을 치르기 위해 호주에서 한국으로 되돌아가는 중이었고, ‘운하와 재회하게 될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막상 한국에 도착했을 때는 아버지의 비보에 더하여 운하의 비보를 접하게 될 테지만 말이다. ‘운하가 죽은 후에 독백하듯 FM에는 재방송이 없다(기술의 발달로 요즘은 상황이 다르다고 하면 왠지 서글플 것이다). 이미 흘러가버린 노래는 아쉬워해야만 할 뿐 다시 들을 수 없다. 지나간 인연, 놓쳐버린 기회, 저질러버린 실수들은 놓아버려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더 좋은 노래가 나오기를 소망하고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다.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라디오를 꺼버리는 순간. FM은 영영 나오지 않아 버린다. 좋은 노래든 나쁜 노래든 들을 길이 없고, 우리의 인생에서 꺼진 라디오는 다시 켜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영혼이 된 운하는 스스로 삶에 대한 미련이 없다고 담담하게 읊조리지만, ‘마리가 곧 한국에 도착해서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란 걸 알았다 해도 미련이 없을까? 작품이 전하고자 했던 것은 삶의 의미 아닐까. 비극적으로 보이는 삶도, 그다지 비극이 아니며, 불행 앞에서 삶을 단념하는 것이 스스로를 진정한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이란 사실을 전하려 한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앞에 언급한 모리슨 호텔의 뜻하는 바와 종합해보면, ‘삶에는 우여곡절이 있을 테지만, 쉽게 좌절하지 말고, 너의 젊은 열정을 평생 잊어버리지 마라’, 이것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한편 작품을 읽다 문득 생각난 부분이긴 한데, 세번째 챕터에 나오는 마리의 이야기는 그 속에서 운하와의 이야기만 소거한다면, 요새 많이 출시되는 페미니즘 단편 소설 중 하나라고 소개해도 모를 것 같다. 20년 전에 쓴 소설이지만 <현남 오빠에게> 소설집에 들어와 있어도 위화감이 없겠다. 작품에서 비판적으로 드러나는 관습적인 성역할 분리와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가장의 모습이 20년이 흐른 후 한국 사회에서 이슈화가 된 것을 볼 때, 한국 사회는 무척이나 더디게 발전했다고 느껴진다.

 

  이만 비평(?)을 마친다. 역량 부족으로 인해 놓친 부분도 많고, 근시안적인 비평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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