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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비평 - 채식주의, 영혜의 꿈, 동박새




개인적으로 한강이라는 작가를 고등학교 졸업하고부터 접하게 되었습니다. 2013년이었죠. 때문에 맨부커 상을 받아 작가가 유명세를 타게 될 무렵, 살짝 속으로 뿌듯함(내 안목이 괜찮았구나 하는 생각?)과 아쉬움(아끼는 작가를 남들에게 잃어버린 느낌? ㅋㅋ)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채식주의자' 연작집도 맨부커 상 받기 이전부터 읽었었는데, 18년도에 학교 문학 교양 수업에서 다루게 되어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생각하며 읽고, 똑같은 부분을 다시 읽어보고 하니까 작품에 대해 좀더 잘 이해하게 된 듯 합니다. 남들과 다르게 이해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문학이 묘미니까요 ㅋㅋ 다음은 '채식주의자' 연작 중 '채식주의자' 부분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달아놓은 것입니다.



작품 속에서 채식주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이와 관련하여 영혜의 꿈과 영혜의 손에 죽어있는 동박새는 무엇을 뜻하는가?



영혜의 채식주의는 그녀가 일생 동안 노출되어왔던 폭력과 억압에 대한 거부이며, 자신에게 내재된 폭력성에 대한 성찰 및 억제이다.

 

 논의에 앞서 육식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육식은 동물의 희생을 수반한다. 때문에 육식에는 항상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한다. 육식을 하는 사람은 가해자이며, 그 과정에서 도축되는 동물은 피해자이다. 동물은 인간과 같이 몸에 피가 흐르는 생명체이다. 도축의 과정에서 동물은 죽임을 당하고, 이후 형상을 알아볼 수 없도록 갈갈이 해체된다. 이 과정에서 동물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붉은 피를 쉼없이 뿜어낸다. 즉 육식에는 한 개체의 일방적인 희생이 전제되며, 이는 상대적 약자에 대한 폭력과 억압을 상징한다.

 

영혜는 줄곧 폭력과 억압에 노출되어왔다. 어렸을 때부터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영혜는 커서도 가부장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는 남편과 결혼하게 된다. (남편의 가부장적인 모습은 그가 아내의 역할을 규정짓는 모습, 그러한 아내상에 영혜가 알맞다고 생각해 결혼했다는 점, 그리고 아내의 동의 없이 성관계를 원하는 장면 등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을 가족 구성원으로 둔 영혜는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여성 혹은 아내의 이미지와 그에 걸맞은 규범으로부터 일생동안 스스로를 옥죄여왔다. 이는 실상 개인에 대한 사회의 암묵적인 폭력이며, 요새 이슈가 되는 젠더 폭력이라고 볼 수 있다. 영혜의 채식주의는 육식을 거부하는 것이며, 육식이 표상하는 폭력과 억압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는 것이다. 사회적 규범, 관습 역시 영혜에게는 폭력과 억압의 일종이다. 영혜는 아주 평범한 여자이다. 하지만 실상 평범하다고 볼 수 없다. 평범이라는 것의 규정도 남편과 같은 타인의 눈에서 자의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실제로 영혜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들은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영혜는 자신이 원해서 주변 환경에 순응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이 현상을 좇을 따름이다. 그만큼 그녀는 나약한 개인이다. 이런 영혜에게 채식주의는 자신의 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것이다. 때문에 이는 단순히 비정상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다. 그녀의 채식주의는 폭력과 억압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인 것이다.

 

  한편 채식주의는 영혜 자신에게 내재된 폭력성에 대한 성찰 및 억제이기도 하다. 여기서 꿈과 동박새의 의미를 다룰 수 있다. 이 둘은 모두 영혜가 아버지나 남편으로부터 당해온 직간접적인 폭력과 억압이 영혜 내부에 폭력성이 깃들도록 만들었고, 이 폭력성이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것을 보여주는 오브제이다. 영혜의 꿈에선 살육과 피의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영혜가 어떤 동물을 죽이거나, 어떤 사람을 죽이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영혜를 죽이는 것과 같은 내용이 꿈 속에서 계속 반복된다. 영혜는 일상생활 속에서 폭력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러한 생각을 의식적으로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당해온 폭력과 억압은 영혜 안에 폭력성으로 내재되어 버렸다. 이 폭력성이 의식적으로 억압되어 있다가, 꿈이라는 무의식의 공간을 만나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는 죽어 있는 동박새를 통해 다시금 확인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영혜의 손 안에는 작은 동박새가 있었는데, 이는 포식자에게 뜯긴 듯한 거친 이빨자국 아래로, 붉은 혈흔이 선명하게 번져[1]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영혜에게 물어뜯겨 죽은 것이다. 당시 영혜는 육식을 거부하다 칼부림 소동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였다. 즉 정신이 이전보다 온전하지 못했다. 채식주의자가 생명체를 물어뜯어 죽인다는 것은 의식적인 행동이라 볼 수 없다. 때문에 이러한 영혜의 행동 역시 의식적으로 억압하고 있던 폭력성이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것이다.



[1] 채식주의자,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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