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

기생충/ 봉준호 作 후기, 해석, 평론

밤톨이@@ 2019. 6. 1. 02:59
반응형

기생충 봉준호 作 후기, 해석, 평론 (스포일러 포함, 지극히 주관적)

 

오랜만에 남기는 영화 후기, 평론이네요. 그동안 후기 남기고 싶다! 라고 할 정도의 작품을 보지 못해서 그런 것도 같습니다.

 

모두가 아시다시피 기생충19년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며, 이로 인해 개봉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습니다. 저는 '출연하는 배우(송강호)가 끌려서, 봉준호 감독 작품이어서, 그냥 포스터가 보고싶다는 생각을 들게 해서'라는 이유로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작품이 유명하든, 어떤 상을 수상했든 끌리지 않으면 안보는 편인데, 이 작품은 너무 보고싶어서, 개봉한지 이틀만에 보고 왔습니다.

 

그리고 작품은 실망시키지 않았고,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저는 스토리 전개가 허술하고,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너무 명확한(예술 작품이 함축하고있는 은유가 부족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하는)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기생충은 스토리 전개가 세심하게 잘 구조되어 있다고 느꼈고,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도 곰곰이 곱씹어보면 꾸준히 생산되는, 잘 만들어진 예술 작품이라 생각해 좋았습니다.

 

작품의 서사는 한 집안의 가족(이하 기우네 가족) 모두가 민혁(박서준)의 과외알선을 통해 알게 된 부잣집(박사장네)에 기생하게 되고, 숙주와 기생충 모두 공멸하게 된다 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두서없이 영화를 보고 느낀 생각의 단상(斷想)들을 끄적여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영화의 말미는 이 영화가 상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임을 느끼게 해줍니다. 인위적인 해피엔딩,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결말은 제가 싫어하는 서사 패턴 중에 하나인데요.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 기우의 희망사항(돈을 많이 벌어, 아버지가 지하에 숨어살고 있는 집을 사서 가정의 평화를 되찾는다)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곧바로 뒤이어 여전히 반지하에 머물고 있는 기우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기우의 희망사항은 한낱 개꿈에 불과하며, 기우 역시 기생충으로 대변되는 삶을 살아갈 것임을 암시하는 장면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윤동주의 서시(序詩)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이 스치운다라는 마지막 문장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환기하며 끝나 여운을 남겼으며,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라라랜드역시 작품의 말미에 남녀 주인공 모두가 개인적 성공은 이룰 수 있었지만, 행복을 함께 이루지는 못한 현실을 보여주며 애잔한 감동을 줍니다.

이 작품 역시 기우의 허황된 꿈과 대조되는 현실을 환기시키며 끝을 맺었다는 점에서 해피엔딩 구조의 단순한 판타지식의 전개에서 벗어났고, 이에 개인적으로 크게 만족했습니다.

 

- 작품에서 기택이 기생충임을 보여주는 장면이 여럿 나오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명확했던 부분은 홍수가 난 뒤 체육관에서 기우와 나눈 대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홍수로 인해 순식간에 집을 잃게 된 기우가 막막한 상황에서 아버지 기택에게 이전에 말한 계획이 무엇이냐 묻는데, 기택은 무계획이라 답합니다. ‘모든 계획은 그르치기 마련이기에, 무계획이 가장 좋은 계획이라고’. 아무런 목표도 없이 되는대로 살아가는 기택의 삶의 자세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더 나아가 사회에 해가 되는 기생충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기택은 지하에 전 가정부 부부를 가둬놓은 뒤 그들의 생사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남들이 어떻게 되든 우리만 잘살면 된다라는 식의 발언을 합니다. (친일을 하든, 뭐를 하든~ 식의 대사였던 것 같습니다) 전형적으로 남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기생충의 모습이며, 이를 사회로 확장시키면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정의, 공동체, 사회 시스템을 파괴시켜도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을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정치인을 포함한 여러 인물들이 머리에 스쳐갑니다). 감독이 그러한 의도를 심었는지는 모르지만, 예술에 대한 해석은 자유니까요.

한편, 이런 기택과는 다르게 기정(박소담)은 그들의 안위를 걱정했고, 너무 심했던 것 아니었나 하며 음식물도 가져다 주려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기정은 역설적이게도 결국 유일하게 살해당하게 됩니다.

여기서 기정의 태도와 기택의 태도는 작품을 유심히 관람한 관객에게는 살짝 불편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박사장네가 캠핑을 떠나서 그 집에 가족들 모두가 들어와 파티를 벌이고 있을 때, 기택은 자신으로 인해 직업을 잃은 전 기사에 대해서 걱정하는 발언을 합니다. 그러자 기정은 '그들은 알아서 살테니까 우리한테나 신경써라'라며 아버지를 타박합니다. 기택이 오히려 타인에게 연민을 가지고 있고, 기정은 반대인 형상으로 비쳐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캐릭터가 극 후반부에는 다르게 표현되니 혼란이 올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나름 의미를 부여해본다면, zero-sum 상황이 극단으로 치닫을수록 사람의 본성이 나오게 되며, 기택의 벌레 같은 본성은 상황이 극단으로 치닫은 작품 후반부에 진정으로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 작품은 부유한 사람들의 허위의식 역시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박사장네 부부의 정사(情事) 장면에서 이것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겉으로는 도도한 척, 고매한 척하는 박사장네 부부지만, 그들이 저질스럽다고 말했던 행위들을 하고, 심지어는 정사 중 마약까지 사달라고 외칩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작품은 그들의 허위 의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부유한 사람들은 숙주가 됨과 동시에 기생충과 공생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기사, 가정도우미 등과 같이 그들에게 기생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존재들 없이는 그들은 정상적으로 삶을 영위해나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전 가정부를 해고한 다음, 집안일 중 어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연교(박사장 부인)의 모습은 이를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예술 작품, 특히 서사성이 있는 문학이나, 영화 같은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물체(‘오브제라고 하는 것이 맞으려나요?)가 등장하면 그 오브제는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오브제는 단연 민혁이 기우네 가족에게 선물했던 수석(壽石)입니다. 지속적으로 등장하던 관상용 돌말입니다. 수석(壽石)은 돌입니다. 아름다워 장식용으로 사용한다해도 한낱 돌에 불과한 따름인 것이죠. 이는 기생충 같은 '기우네 가족'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기우네 가족은 박사장네가족이 캠핑을 떠났을 때, 박사장네 집을 자기 집처럼 누립니다. 기택(송강호)여기가 우리집이야라는 대사도 내뱉습니다. 실제 자신들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고, 거짓으로 꾸며낸 삶을 살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잠시 착각 속에 빠져지내게 되는 것인데요. 그들은 박사장네가족이 집에 돌아옴에 따라 아무것도 없이 남들에게 얹혀 기생하고 있는 현실을 자각하게 됩니다. 영화 말미에 이 수석(壽石)은 냇가의 다른 돌들 사이에 놓아지게 되는데, 이는 다송(박사장 아들) 생일날의 해프닝으로 인해 실체가 탄로나 기존의 비루한 생활로 돌아가게 되는 기우네 가족과 오버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수석(壽石)은 기우네 가족의 허위 의식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홍수가 나서, 집이 물에 잠겨있는 상황에도 기우는 돌덩이에 불과한 수석(壽石)만큼은 챙겨나오죠. 실제 삶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지만, 남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럽지 않은 돌덩이. 기우네 가족의 허위 의식을 나타낸다 할 수 있겠죠.

 

- 배우 캐스팅 및 연기력을 생각해본다면, 정말 탁월했다고 느껴집니다. 송강호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외의 배우들 박소담, 최우식 등 다른 배우들의 연기력도 탁월했으며, 배역과의 궁합이 잘 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박소담의 경우에는 주관적인 평가이긴 하나, 화려한 마스크가 아니기에, 남자로치면 류준열과 같은 스펙트럼이 넓은 배역을 소화할 수 있는 것 같아, 배우로서는 축복받은 조건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편 배우들 중에서 가장 배역과의 매칭이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한 것은 부잣집 사모님 역할을 맡은 조여정이라 생각했습니다. 고상한 듯 보이나, 허술한(민혁의 말로는 ‘simple’, 단순하고 무식하다를 돌려말했다고 생각됩니다), 더불어 부잣집 사모님이라는 허위에 싸여 있는 모습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됩니다. 예전에 정글의 법칙에 나와 반전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했기에 캐릭터 소화가 탁월했다고 여겨집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다시 보고싶은 작품입니다. 버닝, 인셉션 등 처럼요. 볼 때 마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영화에 대해 무언가 끄적이지 않으면 못 배길 것 같아서 쓴 글이라 두서가 없습니다. 그래도 제가 영화를 보며 들었던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