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

버닝(Burning)/ 이창동 作 후기.

밤톨이@@ 2018. 12. 24.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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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 이창동 감독 作



영화 후기 전문 블로그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을 보고 느낀 단상이 시간이 흘러 스러져버릴까봐 조금 끄적거려본다.

작품에 대한 어느 후기도 보지 않았으며, 나는 문학이나 영화 전공자가 아니다. 때문에 말도 안되는 소리를 끄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이는 내게 만큼은 진실이다.



저 포스터 안의 세 배우. 모두 연기가 뛰어났다. 유아인(종수)의 무기력하고 터덜터덜한 발걸음. 병신 같은 걸음걸이. 사회부적응자를 표현하는 몸짓들. 좋았다. 완득이였나 생각이 났다. 항상 깔끔한 개새끼 역할이었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이런 누추한 느낌의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


전종서(해미)라는 배우는 처음 봤는데, 마스크도 이국적이랄까. 살짝 강렬한 느낌도 있는 듯 하고. 고양이 같기도 하고. 캐릭터에 잘 맞는 외형이었다. 연기도 좋았다. 해미라는 인간을 잘 표현했다. 


스티븐 연(벤)! 헐리웃 배우로 알고있는데, 한국 스크린에서는 처음 봤다. 나는 코니 오브라이언과 같이 한국 체험한 것으로 알고 있는 배우이다. 연기 역시 탁월했다. 부유한 사이코패스의 모습을 잘 보여줬다. 보는 내내 '개같네' 라는 느낌을 주었다. 외국에서 오래 산 사람의 억양. 있는 자의 배려, 그와 함께 상대방은 자신과 다른 위계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피식거림(더 좋은 단어가 있을텐데). 때려주고 싶게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


메타포. metaphor. 경복궁 옆에도 메타포 라는 이쁘고 작은 카페가 있는데..

유아인은 작가 지망생이다. 중간에 어떤 이유였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메타포가 잠깐 언급됐다.

그리고 그 메타포가 작품의 후반부를 끌어가는 열쇠다.


Burning. 엔딩 크레딧을 보는데, 작품의 원작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였다.

그냥 청춘 영화 라길래. 버닝은 청춘의 열정 이런거 뜻하나 싶었다. 이런 내용일줄도 몰랐다. 그냥 봐야지 하고 있다가 극장에서 내려간지 한참 뒤에나 찾아 보게되었다.


헛간을 태우다. 여기선 비닐하우스를 태우다 이겠다. 비닐하우스를 태운다는 것은 '벤'의 취미 중 하나이다. 두달에 한번씩 태운다는데, 이를 통해 심장의 바운스를 느낀다고 한다.(조용필 노래가 생각난다. 큰일이다.) 이게 이 작품의 중요한 메타포였다. 사건의 열쇠이기도 했다.


비닐하우스를 태운다. 어떤 비닐하우스? 버려진. 그냥 아무도 찾지 않는 버려진 비닐하우스를 찾아 불태우는 취미를 가졌다고 '벤'은 '종수'에게 말한다. 벤은 종수의 근처에 있는 비닐하우스를 태운다고 말했고, 이에 종수는 집 근처의 비닐하우스를 며칠 간 샅샅이 찾아다닌다. 어떠한 비닐하우스도 불에 타지 않았다. 그동안 '해미'는 연기처럼 사라지게 되었고, 벤은 해미의 행방을 모른다고 말한다. 더불어 벤은 종수의 아주 근처에서 비닐하우스를 이미 태워버렸다고 말한다.


쓸모 없는, 아무도 찾지 않는. 벤이 불태워버린 비닐하우스는 단지 메타포였던 것이다. '외로운, 의지할 데 없는, 사라져도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그러한 여성들을 뜻한 것이다. 이를 불태워버린다는 것은 '그녀들을 죽인다'는 행위인 것이고 말이다. 메타포를 그냥 여과 없이 듣게 된 '종수'는 여느 관람객과 마찬가지로 '비닐하우스'라는 표상에다 헛발질을 갈기고 있었다.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 말이다. '벤'의 농락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종수의 가까운 곳에 있는 비닐하우스를 태울 것이라는 벤의 말은 '해미를 죽일 것'을 암시하고 있었고, 이미 태워버렸다는 것은 이미 해미를 없애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수는 해미를 사랑하고있다고 벤에게 말했는데, 벤은 그런 사람 앞에서 '난 너의 베아트리체를 죽였다.'라고 또 한번 농락한 것이다. 아주 개새끼이다. 쓰면서 느끼는데, 종수가 죽일만 했다.


종수는 몇 가지 추측으로 벤이 해미를 없앤 것을 확신해간다.


1. 해미의 집이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고(캐리어는 있으니 여행간 것은 아니고)

2. 벤의 집에서 해미의 시계를 보게 되었고 (벤은 자신이 불태운 비닐하우스의 흔적을 모으는 취미를 가졌다)

3. 고양이가 '보일'이라는 이름에 반응했고(즉 해미의 고양이란 뜻)


+) 해미와의 마지막 연락에서 다급했던 소리들.


그리고 나중에 종수 역시 메타포의 의미를 깨우쳤을 것이다.


이를 깨달은 종수로서 할 수 있는 일은?

1. 그냥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살거나

2. 벤을 죽이거나


다른 선택지는 딱히 없어보인다. 그리고 종수는 두번째 선택지를 선택했다. 이는 아버지를 닮은 종수의 성격에 기인한다. 불같은. 앞뒤 제지 않고, 자기가 맞다고 확신하는 대로 행동하는. 그런 아버지 말이다. 자신이 머리만 조금 조아리면 형(刑)을 감면받을 수 있는데, 아버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징역을 선고받는다. 그런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종수는 두번째 선택지로 향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볼 수도 있겠다.


- 좀 벗어난 얘긴데, 지금 MBC 사장인 '최승호' 피디가 종수의 아버지 역으로 나와서 잘못 본 줄 알았다. MB 취재하시는 모습으로 뵈었던 분이 저런 곳에 있을리가 했는데 말이다. 출연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하다.


좀 더 끄적이려 했는데, 까먹었다. 생각나면 더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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